동물의 권리와 동물 복지 문헌을 읽다 보면 어떤 식으로든
‘다섯 가지 자유’에 대한 언급과 마주친다.
1960년대 브람벨 보고서Brambell Report라고도 알려진 〈집약적인 가축 농업 시스템에서 동물 복지 조사를 위한 기술위원회 보고서Report of the Technical Committee to Enquire into the Welfare of Animal Kept under Intensive Livestock Husbandry Systems〉는 가축을 위한 최소한의 복지 기준을 세웠다.
여기에는 서고, 눕고, 몸을 돌리고, 몸을 손질하고, 사지를 펼 자유가 포함된다. 대단치 않게 들릴지 모르지만, 당시 동물의 기본 욕구에 대한 이런 기준은 혁명에 가까웠다. ‘동물의’ 욕구를 고려해야 할 도덕적인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는 사실을 전면적으로 인정한 것이다.
사육 틀stall이나 우리에서 몸을 돌릴 자격을 인정하는 것은 실제 동물 복지와 괴리가 있었기에,
1993년 영국농장동물복지위원회UK Farm Welfare Council는 다섯 가지 자유를 다음과 같이 수정했다.
1. 기아와 갈증에서 자유
2. 통증과 부상, 질병에서 자유
3. 불편에서 자유
4. 정상적인 행동을 표현할 자유
5. 공포와 고통에서 자유
농장동물복지위원회가 조심스럽게 지적한 대로 이 다섯 가지 자유는 달성 가능한 목표라기보다 이상향에 가깝다. 베이컨을 위해 사육되는 돼지는 공포와 고통, 불편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고, 정상적인 ‘돼지다움’을 온전히 표출할 수도 없다.
이런 동물 복지의 기준은 젖소와 돼지 같은 가축을 위해 마련됐지만, 위의 다섯 가지 자유는 동물원의 동물부터 보호소의 개, 실험실 케이지 속의 쥐까지 인간에게 감금된 모든 동물의 복지를 논의하기 위한 공통 기준선이 되었다.
진정한 동물 애호가라고 자처하며 함께 사는 동물의 욕구에 충실하게 대응한다고 자신하는 사람도 이 다섯 가지 자유에 마땅히 관심을 둬야 한다. 개선할 여지가 많다는 사실에 놀랄지도 모르니.
‘짐승처럼 죽는다’는 말이 평화롭고 정중하고 의미 있는 죽음을 뜻하는 세상에 살면 좋겠다
나는 여섯 번째 자유를 추가했으면 한다.
좋은 죽음을 맞을 자유다.
좋은 죽음이란 불필요한 통증과 고통, 공포에서 자유로운 죽음이다.
좋은 죽음은 평화롭고, 연민 어린 목격자들이 함께하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무엇보다 죽음의 온전한 의미가 허락되는 죽음이다.
동물의 죽음이 의미 있기를 바란다면 이상한 말일까? 최종적인 소멸 행위가 유의미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고, 실제로 그렇다. 죽음은 분명 죽는 주체에게 의미가 있다. 음악 작품이 끝날 때 그 곡에 필요한 해결 화음을 가져오는 마침꼴과 같은 것이다.
이 책은 선한 사람이 나이 들어 죽어가는 자신의 동물로 인해 처할 곤경을 다룬다.
하지만 죽음은 살아남은 이에게 더 의미 있는 일인지 모른다.
죽음이 생명의 가치를 확정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동물을 가치 있게 여긴다면 동물의 죽음도 가치 있게 여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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