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디의 일기 - 살아있을 때 가치있는 이별을 준비하라

『오디와의 이별』 우리는 왜 반려동물의 죽음을 더 슬퍼하는가?

도서출판 황소걸음 2018. 4. 5. 16:29

어떤 꿈결에, 나는 의자를 뒤로 밀치고 오디가 기다리는 입구로 가서 오디의 부드럽고 붉은 머리를 두 손으로 감싼다.









오디 일기(2011년 11월 29일, 오디가 죽고 1년 뒤)

  

  

로빈슨 제퍼스Robinson Jeffers이 쓴 〈집 지키는 개의 무덤The House-Dog’s Grave〉 1연을 보면 유령 개가 인간 친구에게 말한다. 

  

내가 방법을 조금 바꿔서

이제는 저녁 무렵 해변을 따라 너와 함께 달릴 수 없어

어떤 꿈결에, 그리고 네 안에서라면 모를까

네가 잠시 꿈을 꾸면

거기서는 내가 보일 거야

  

오디도 자신의 방식을 조금 바꿨다. 그러나 오디는 여전히 여기 있고, 앞으로도 영원히 내 삶의 지형에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오디는 우리 집에 자신을 선명히 남겼다. 소파에 남은 꿰맨 상처에도, 추가로 높인 울타리에도, 문틀의 긁힌 자국에도. 집 안의 모든 담요와 침대보에는 불안감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던 오디가 만든 구멍이 있다. 오디는 내 마음에도 자신을 아로새겼다. 그 어떤 생명체 못지않게 충만하고 고통스럽게. 오디는 나의 일부가 되었다.....   중략




죽어가는 것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일어나는 생물학적 과정이듯, 죽음은 생물학적 유기체가 멈출 때 실제로 끝나지 않는다. 오디가 생물학적으로 죽은 시점(오디의 심장박동이 서서히 멈춘 20~30초)은 확인할 수 있고, 그 마지막 숨에 대한 최후라는 감각은 지독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오디가 죽어가는 과정은 대단히 고유한 방식으로 아직 진행 중인 듯하다.

 

합당한 방식으로 의식을 치르고, 반려동물의 죽음을 의미 있게 새기고, 동물과 우리의 유대를 예우할 수 있어야 한다. 의례는 간단하거나 복잡해도, 짧거나 길어도 좋다. 죽은 동물에 대한 우리의 존중을 적절히 보여줄 수 있으면 다른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이런 과정은 동물 병원에서 갑자기 동물을 안락사 시킨 사람들에게 특히 도움이 된다. 안락사 과정에는 대부분 경황이 없어서 작별 인사를 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는 더구나 이 과정이 중요하다고 한다. “네가 학교에 간 동안 플러피Fluffy가 떠났어”라는 말로는 턱없이 부족하다.



동물 병원에 애완동물의 사체를 두고 나선 뒤, 혹은 수의사가 집에서 동물을 데려간 뒤에 사체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 걱정되면 질문을 아주 많이 하라고 조언한다. 사체는 어떻게 되는지(화장되는지, 매립지로 가는지, 수의대에 기증되는지), 화장을 선택하고 비용을 지불했다면 사체는 정확히 어떻게 다뤄지는지, 어떻게 포장되고 수송되는지, 냉각실 아니면 냉동고에 보관되는지, 화장 후 유골이 진짜 내 애완동물의 것인지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지….






동물을 잃고 아파하거나 애도 중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눠본 사람은 우리가 경험하는 슬픔이 사람을 잃은 슬픔과 한 치도 다름없이 매섭고 고통스러우며 지속적(그리고 병리적)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안다.


사람들은 동물에 대해 느끼는 슬픔의 힘에 놀란다. 사람보다 애완동물을 잃었을 때 더 강력한 슬픔을 경험하는 사람들이 많다. 사람들은 때때로 자신의 슬픔에 순위를 매기고, 부모나 배우자를 잃었을 때보다 애완동물의 상실이 슬프면 죄책감에 휩싸인다. 엘리스는 동물을 향한 슬픔은 간명해서 어떤 면에서는 사람을 향한 슬픔보다 순수하고 응축적이라고 설명한다. 동물에게는 감정의 응어리가 없다. 동물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사랑은 동물을 향한 우리의 사랑처럼 무조건적이기 때문이다. 순수한 슬픔이 있을 뿐이다. 이 말이 모든 이에게 진실인지 모르지만 최소한 나에게는 그랬다.


슬픔은 주기가 길다. 다가올 상실을 감지하는 예기 애도anticipatory grief로 시작해서 죽음의 순간, 깊은 슬픔을 통과하고, 사후 사별 과정으로 들어간다. 나는 예기 애도가 가장 심각한 단계였다. 나는 오디가 죽음에 다가가기 오래전부터 슬펐다. 오디가 죽는 순간은 물속으로 가라앉는 듯 격렬한 슬픔으로 고통스러웠다. 그런 느낌은 몇 시간 이상 지속되지 않았다. 이제 내 슬픔은 대부분 마음 뒤편에 조용히 있다. 오디가 떠오르는 어떤 것을 마주칠 때, 내 책상 위에 걸린 오디 사진을 볼 때, 차고에서 붉은 털이 박힌 낡은 담요를 발견할 때, 다른 비즐라를 볼 때는 날카로운 슬픔에 찔리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런 때가 아니면 슬픔은 그저 부드러운 존재다. 






오디의 재는 작고 동그란 통에 담긴 채 내 책상 모퉁이에 기대에 찬 듯 놓여있다. 내가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할 용기를 그러모으면, 나와 오디는 초원 꼭대기로 마지막 여행을 할 것이다. 땅바닥이 서리로 여전히 딱딱하고, 숲의 노래가 추위에 얼어붙은 겨울에 올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이 대단한 모험을 봄에 떠날 수도 있다. 다시 생명이 움트고, 할미꽃이 피어나는 봄에.

  

작은 사진 속 오디가 저 먼 곳을 응시하듯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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